2003 년 6 월 8 일 (주일) 늦은 밤 - 날씨..?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영문법을 접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희미하게 기억나는 규칙 몇 가지. If S + v , S will/shall R (가정법 현재) 혹은 If S + p.p. , S + would/should R (가정법 과거) 혹은 If S + had p.p. ~ , S + would/should have p.p. ~ (가정법 과거완료) ..
이 기나긴 설명은 그 표현을 실제 회화에 있어 사용하는데도 어려움을 낳았다. 더군다나 ”~ 했었다면, ~ 했었을텐데.. (현재는 그렇지 않으나 그러길 바랬던일)” 이란 식으로 복잡한 우리말 주석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말할 때 혼동이 되기 일쑤였다.
그 어려운 가정법이 요즘 내 일상에서는 자주 사용되고 있다.
“밥먹고 전화할께.”
“이것만 다하면 같이 놀러가자.”
“잠시만.. 우선 요것 좀 하고 나서 해줄께.”
미래에 대한 약속들. 얼핏 보면 일반적인 약속과 차이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반드시 해야 할 전제조건” 이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향한 믿음, 심지어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에서 조차 이러한 가정법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 만 해주시면..” “네가 먼저 이랬으면..” 등등.. 언제부턴가 그 어려운 가정법이, 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부터 원인을 찾는 자기 합리화의 모습으로 사용되어 지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끊이지 않는 다툼을 일으키게 된 것도 이러한 내 “가정법” 에 원인이 있었다. “조금만 안정되면..” “시간만 좀 더 있으면..” 이란 식으로 상황을 이유삼아 둘러대기 일쑤였으니, 내 안에 올바른 변화와 최소한의 성의가 드러날리 만무했던 것이다.
가정법. 내 말 속에 이러한 전제 조건이 늘어나면 날 수록,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것 한 가지는, 그만큼 “못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일게다.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는 일에 왜 이렇게 부끄러워진 것인지. 나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아픔이 하루 빨리 치유되길 소망한다.
소중한 일을 먼저 찾아 해야겠다. 또다시 그 어려운 가정법이 나타나지 않도록.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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