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 10일 (화) 자정을 넘긴 새벽 - 비가 내리더라구요, 아주 많이..

출발 3 일전. 아침부터 우즈벡과의 지속적인 교신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 항공권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다행히 비자 발급은 현지 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도움은 우리가 드려야 하지만, 난 벌써부터 그 곳의 도움을 ‘받고’ 있다. 감사함과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밤에 다시 시내로 이동, 뒤늦게 나마 서점에 들려 여러 책들을 다시 살펴보고, 우연히 후배들을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 먼 곳으로 그렇게 오래 떠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요즘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비가 와서 그런가..?

집으로 돌아와 조금 전까지 짐 정리를 했다. 오늘 하루 내 방 침대와 책상, 의자까지 가득 덮고 있던 짐들을 미리 아버지께서 준비해 주신 박스에 조용히 담았다. 시간이 너무 늦었으므로.. ( 하지만, 잠은 자야 했기에.. ^^; )

대부분의 짐들을 박스에 담아 놓고 나니, 검은 색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이 봉투의 사연은 이렇다. 지난 97 년, 나의 우즈벡 첫 방문 때 홍 선교사님 댁에서 가정일을 돌봐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고려인으로, 일제 시대 때 이 곳으로 강제 징용 당한 우리 민족의 후손이셨다.

특별히 난 아주머니께서 신선한 우유와 그 곳 과일을 발효시켜 만들어 주신 ‘천연 요구르트’ 의 열성 팬이었다. 한국의 요플레, 슈퍼100 (97년 당시..) 을 능가하는 맛과 신선도는 함께 간 모든 선교팀원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 분이 한국에 오셨다. 지난 99 년 해외 근로자 자격으로 입국, 드디어 외국인 신분으로나마 자신의 고국에서 일을 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즈벡엔 아주머니의 아들과 가족들이 있었고, 이 검은 봉투는 아주머니께서 땀흘려 일하신 댓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즈벡에 남아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선물이다.

실은 내 어머니께서도 내가 초등학교 6 학년 때부터 작은 제과점을 운영해 오고 계셨다. 아직 전부를 알지는 못하지만, 난 어머니가 가정을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이 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은혜이며, 사랑인지를 수 년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이 곳에서 3500 마일 떨어진 곳의 아들을 위해, 행여 그곳의 사회 환경 속에 자신이 마련한 선물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까 싶어 우리에게 이 소중한 선물을 전해주신 것이었다. 그저 몇 개의 옷가지와 한 켤레의 신발일 뿐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씀 속에는, 진정 아들을 사랑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베어 있었다.

잠시 검은 색 봉투를 안고 기도를 드렸다.

난 그저 작은 손길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가진 달란트는 나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난 이번 봉사 활동의 주관자가 아닌, 도우미 협력자 일 뿐이다.
‘주는 옹기장이요, 나는 진흙’ 이라는 초등학생 때의 찬양을 기억한다..
모든 뜻은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난 더욱 아름다운 소망을 품은 진흙이 되어야겠다.
정한 마음으로.. 정결한 영으로..
항상 기뻐함으로.. 범사에 감사함으로..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