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3일 (토) 저녁 - (밀린 일기) 날씨 기억 안남.

한동안 또 일기를 적지 못했다.
이렇게.. 꼭 늦는다.. “늦어도 반드시 지킨다” 는 이야기로 신뢰를 구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만 여겨지는 계절이다. 시간은 어느 덧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하고 있으므로.

예전에 - ‘말을 잘한다’ 고 칭찬 받고 으쓱거릴 즈음에.. - 가까운 벗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넌 말을 잘 못해.”

‘세상에.. 난 홍대 방송국 유일한 27기 남자 아나운서였고, 지금도 글을 쓰고 읽는 것 만큼은 자신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말을 잘 못한다고 하느냐..??!!’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었다.

난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말 속에 감정을 담거나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다반사다. 이유야 어찌됐든, 무슨 주제에 대한 말을 하든, 내용을 빙빙 돌려서 그럴 듯한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난 평소 내가 좋아하는 교회 후배에게, 자연스러움을 보이려고 다른 이와 같이 만날 것을 제안했다. (내가 그녀를 좋아했었는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던 말들(?)에도 정작 난 그 날 쓸데 없는 말만 늘어놓고 돌아왔다. 그 이후로 이어진 여러 상황과 일들은 자연스레 한 사람을 놓쳐 버리게 했다.

또 한 번은 대학부 회장 선거의 추천사를 할 때였는데, - 24기 은식이와 25기 주영이의 추천사를 맡았었다 - 갖고 올라간 대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그들과의 “추억” 만을 말하고 내려오곤 했다. 정작 중요한, “이 사람들은 진정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고, 여러분의 도움으로 가장 소중한 자리에 헌신될 사람” 이라는 Key Point 를 놓쳐 버리곤 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자리에 세워지긴 했지만.. 나의 어눌했던 추천사는 지금 생각해도 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난 사랑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오늘 아버지께서 대학부 헌신자 학교 (리더 모임) 의 특강을 맡으셨었다. 마음 한 곳에 아버지께 격려와 응원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기도할께요” 라는 말로 대신했다. 뿐만 아니라, 난 아직 대학부 누구에게도 ‘장로님이 내 아버지’ 라는 고백 아닌 고백(?)을 속 시원하게 해 본 적이 없다.

오랜 세월동안 큰 회사에서 여러 젊은 이들에게 지식과 경험을 전해주신 아버지의 강의는, 이 날 내게 처음이었다. 늘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버지의 사회 활동 속에 한 번 얼굴 비추지 못한 내 모습이다.

난 아버지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사랑한다.
진심으로 이런 말씀을 진지하게 드려보고 싶었지만, 오늘도 난 그랬다.

“아버지, 특강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

언제까지 내 마음을 ‘알아주기만’ 바랄 수 있을까.. 말과 사랑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