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3 월 13 일 (토) 늦은 밤 - 황사가 그래도 많이 약해졌다.

아침 일찍 사무실 업무를 정리하고 옛 모교로 향했다. 매 년 두 차례 열리는 일이 벌써 세 번째 리쿠르팅이 되었다. 매 시 정각 라디오에서 들리는 뉴스를 듣기 위해 볼륨을 높였는데, 무슨 스포츠 중계 같은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열린 우리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제일 높은 곳.. 아.. 결국 끌려나가네요.. 이렇게 의장의 경호권이 발동되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의경들에 의해 지금 막 이XX 의원이 끌려나갔죠.?”
“네, 이것으로 모두 12 명째 의원이 끌려나갔고, 지금 의석에서는 야당 총무들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 대통령의 기자 회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민심은 흉흉해 졌고, 탁핵안 발의에 대해 사과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입장이 야당 의원들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임기가 1 달 남은 국회는 임기 4 년을 남겨둔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문제는 이제 부터다. 헌법 재판소의 판결이 1 달 이내 날 경우, 우리 나라의 국정 운영은 결국 “국회도 없고, 대통령도 없는” 공황상태가 잠시나마 지속될 것이다. 가뜩이나 선거철 마다 씨끄럽고 정신없던 우리 사회. 총선+대선이라는 이 어마어마한 숙제를 누가 풀어갈 것인가.

뿐만 아니라 이번 국회의 탄핵 결정에 대해 나타나고 있는 사회 분열의 심기는 도를 넘어섰다. 노사모 회원이 분신 자살을 기도한 것은 물론, 오히려 잘 됐다며 박수를 치는 사람들까지. 극단적인 대한민국 정치는 이제 지역감정 뿐만 아니라 계층과 사회 갈등까지 일으키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우리 나라 정치의 가장 큰 고질병 중 하나는, 잘못은 있되 책임은 없다는 일부 정치인들의 잘못된 특권 의식이다.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환호성은 이러한 책임의식의 결핍이 ‘탁핵’이라는 극약 처방으로 일부 해소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탄핵안을 가결시킨 국회는 깨끗한가. 수 백억을 트럭 차 떼기로 받아 챙기고, 어디에 사용 되었는지도 모르는 수 천억의 돈이 오가는 국회의 정치판에서, 과연 누가 누구를 내쫓고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오직 이러한 고래 싸움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일 뿐이다. 누구를 지지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난에 여러 재해까지 겹쳐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쉽지 않은 이들의 일상에, 그 어느 정치인이 작은 관심이라도 표명했단 말인가.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치열한 경제 전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칼날을 다듬고 있을 이 때에, 아직도 우리는 서로가 “네 탓” 이라며 싸우고 있을 뿐이니 이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의 냉소적인 시각도 이해할 만 하다.

‘못하면 바꿔 버리면 된다’ 는 선례를 정치인들 스스로 만든 것도 문제다. 임기의 1/5 을 간신히 넘긴 대통령을 “못한다” 고 갈아치운 국회는 이제 어느 대통령이건 아주 작은 실수 하나에도 ‘쫓아내겠다’ 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 분명하다. 국민에게도 파면권이 있었다면, 이미 국회도 수 십차례 물갈이가 되었을텐데..

지금은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다고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서로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어 안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화합과 공생의 패러다임이 절실한 때이다. 자기를 이해해 달라며 미래를 향한 명쾌한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한 대통령이나, 대통령보다 더 돈을 받아 먹어 놓고 대통령 형편없다면 갈아 치운 국회나.. 국민이 보기엔 모두가 똑/같/다/.

이번 총선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저 이러한 우리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