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베푸신 은혜 속에서도 늘 걱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다. 지금 까지 함께 하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음에도 여전히 의심하게 되는 사람의 연약한 지혜.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 속에 출애굽기의 만나가 내려왔다.

하나님을 원망한 백성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쉽게 잊어버렸다. 광야로 나온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모세와 아론을 탓했던 이들의 모습 속에는 사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상과 상황을 탓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이다. 내가 처한 현실과 다른 사람을 몰아세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위로 받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백성의 원망하는 모습이 결국 주님되신 그 분을 탓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민족의 중보자로 하나님 앞에 선 모세에게 놀라운 약속이 전해졌다.

보관되지 않는 만나

새벽 안개 속에 맺힌 만나는 안식일을 빼고 매일 아침 내려왔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모아서 그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조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셨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그것을 쌓아 두길 원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허락치 않으셨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은 참된 부요함과 은혜의 소망을 일깨워주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40 년동안 빠짐없이 내려온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은혜와 수확의 기쁨을 전해줬을 것이다.

나의 불만, 새로운 은혜

‘만나’란, 히브리어로 “이게 무엇일꼬?” 란 뜻이라고 한다. 생전 보지도 못한 은혜가 축복으로 자리할 때. 하나님의 행하심과 보살핌 가운데 있음을 감사하게 되는 것 같다.

문제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내 모습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내게도 “이게 뭘까?”란 의문은 있지만 결코 긍정적인 감사가 아닌 편해 보이지 않는 귀차니즘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나면 또 다른 아침이 밝아온다. 수확의 기쁨은 저리하고 피곤한 직장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집을 나서는 내 모습. 하루 빨리 만나에 담긴 주님의 뜻과 사랑을 깨닫게 되길 소망한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