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진 토요일 저녁. 서울 시내 도로 위 자동차 숫자가 차산차해다. 한남’대’교, 반포’대’교,  올림픽’대’로, 강남’대’로, 영동’대’로 다 막힌 상황. ^-^; 결국 차를 회사에 두고 과감히 뚜벅이를 택했다. 내일 또 움직일 때도 걸어야지.. 현명한 판단되길.

아이가 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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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이가 있어서인지, 차량 악세사리 스티커 제조사들의 성공적인 마케팅 덕분인지. 근래 들어 ‘아이가 타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는 차량 뒷 유리의 글귀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적어도 예전에 볼 수 있던 ‘초보운전’ 보다는 훨씬 많다.

그런데 막상 뒤따라가며 그 문구를 볼 때면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지..’ 란 생각이 든다. 음.. ‘초보운전 처럼 좀 천천히 가도 이해해 주세요’..라고 하기엔 운전에 꽤 적극적이신 듯 하고, 인터넷 뜻 처럼 ‘아이 먼저 구조해 주세요’라면 뒤쪽보다 아이가 탑승한 창문 쪽에 문구를 보이는게 좋지 않았을까.

매너 바라기?

물론 같은 아빠로서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독일처럼 아이들이 탄 차량을 좀더 넓은 폭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된던가, 아니면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기 더 낫도록 캠페인을 하던가. 그런데 단지 ‘타고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이해해 달라’는 뜻으로 밖에 읽히지를 않는다.

[caption id="" align=“alignnone” width=“663” caption=“개콘 유장프 코너 ^-^. 코너가 끝날 것 같은 상황을 걱정하는 후배를 다독이는(?) 선배의 표현이 거침없다. ^-^;;”]image[/caption]

매너를 바라는 명제가 늘어가고 있다. ‘부자와 서민 모두 잘 사는 사회’ 같은 Irony는 그렇다 치고, ‘그거 알아?’, ‘그래서 그랬대’ 같은 사실과 감상의 재전송까지. 추상적인 명제들은 SNS, 이메일 같은 공유 플랫폼에 태워져 급속도로 전파되지만, 우리의 읽기 시간과 느끼기 열정을 가져갈 뿐 결국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른 명제를 보내올 뿐이다.

바라고 행하는 것

새롭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 생각하기’를 배워가고 있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마다 깊은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가능한 오해가 없도록. 또 지나간 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순간이라도 주어진 때에 최선을 다해 그 마음을 읽고 전하는 것이다.

뚜벅이로 이동 전략을 바꾸고 역삼역을 빠져 나오는 길. 우리나라의 자선냄비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아까는 급해서 그냥 지나쳤다고 하지만, 놓쳐버린 순간의 기회가 되지 않도록 돌아갈 땐 꼭 다가가야지. ^-^; 단지 이해를 구하는 명제보다, 바라는 것들을 실제로 행하는 작은 실천들이 더해져야 할 때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