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 4 월 17 일 (목) 밤 - 전화가 올 때마다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래전 기억으로, 평범한 아름다운 동화의 한 대목으로 받아들이곤 했지만 오늘 문득 운동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동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상적으로 부족할 게 없었던 평강 공주는 그 평생의 반려자로 어리숙한 바보, 온달을 택한다. 심성이 착한 바보 온달은 충심을 다해 평강 공주를 사랑했고, 이러한 정성이 평강 공주의 아름다운 마음을 감동케 한 것이다.

바보 온달에게는 아마도 욕심이 없었던 듯 싶다. 이미 세상에서 낮아지고 낮아진 사람의 자세로 평강 공주를 대했기에 그는 평강 공주를 있는 그대로 대하고 받아들이기에 힘썼을 것이다. 평강 공주 또한 그동안 만나본 수 많은 “잘난” 왕자들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진실함을 발견했고, 서로를 섬김에 있어 세상의 구분과 신분의 높고 낮음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평생 내 마음 속의 신념이자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삶 또한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기에는 바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자가 마굿간에서 태어나 사람들이 멀리했던 낮고 천한 사람들과 함께 했으니, 당시 종교적 신분적 교만에 들 떠 있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에게 미움을 샀음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을 내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에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셨으니, 그의 희생은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요 온전한 사랑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를 “바보”라 부르기에 너무 욕심이 많은 사람일 뿐이다.

바보 같은 사랑. 묵묵히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바보가 되고 싶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함에 있어 먼저 내 유익을 구하고 내 앞 길을 계산해야 했던 어리석음을 이제라도 떨쳐 버리고, 이러한 나의 부족함으로 상처입은 이에게 다가가 용서를 구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나의 “똑똑하고 잘난” 척 하는 모습은 화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서서 기다려주고, 약간의 짜증과 불평에도 잔잔한 미소를 건넬 수 있는 여유로움이 왜 내게는 드러나지 못했던 것일까..

마음이 넓어 모든 투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차라리 겉으로 드러나는 욕심이 없이 바보처럼 사랑하고 싶다. 뜨겁고 화려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온화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누리고 싶다.

이제 깨달았으니, 이거 또한 “바보” 짓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바보의 사랑” 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