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년 2 월 14 일 (월) 저녁 - 구정연휴 일본출장에 이은 여수출장.. 발렌타인 없음.


어제 주일 저녁 찬양예배 시 부모님의 파송식을 마치고, 함께 모인 친지 분들과 Ganga 에서 가진 간단한 저녁 식사. 이제서야 “떠난다는 느낌이 든다” 는 부모님의 말씀에 잠시 옛날 얘기가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가족 중 누구 한 명 비행기만 타도 울었지.”
“암, 어디 먼 데 간다고.. 공항까지 마중/배웅 나와서 비행기 하늘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단다.”

근래 며칠 간 마지막 뒷정리를 하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비단 옛 시절 비행기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떠난다” 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사실 회사에서 인정 받으시던 아버지께서 왜 야간 대학원 공부를 하시는지..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에 은퇴 후 시작하신 박사 공부는 아무리 그것이 학구열이라 해도 아버지 “개인의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갈렙과 같은 신앙으로 자리 매김 되어, 이제 아버지는 잘 정돈된 지금의 일상을 떠나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교 교수님으로 어머니와 함께 가시게 되었다.

우리 교회 처음으로 시무 장로님을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한다는 목사님의 말씀과 축복 기도 속에, 그저 눈 위에 맺힌 흐릿한 방울 너머로 앞에 서 계신 부모님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내 모습.. 일찍이 “지시할 땅”으로 가야 했던 아브람과 같이, 이틀 밖에 남지 않은 부모님의 출국 길은 인간적인 준비를 아무리 더해도 막막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아들의 자리에서 파송하며, 앞으로 이 두 분이 겪으실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과 선한 승리의 싸움을 위해 늘 잊지 않고 무릎으로 동참할 것을 다짐한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파송식 아버지 말씀 보기]
 (조금 늦게 녹화를 시작해서 담기지 못한 아버지 말씀의 서두에는,
  “부족한 죄인을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어 연변 과학기술대학에
  보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라는 말씀과 성도님들에 대한 인
  사가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