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든 쪽으로 결정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다수가 원하는 것”이라는 명분. 그러나 실제로 다수가 지지하는 것이 늘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들리는 전체, 허울 뿐인 평등
다수결의 폐해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전체주의다. “모두가 잘 산다”는 이상론에 근거하지만 결국 이는 “개인이 노력한 만큼 수고를 얻는” 기본 법칙에 왜곡을 가져왔다.
오히려 개성과 자율을 제한해야 하는 현실 앞에 ‘지배층’ 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 극심한 “부의 격차”를 불러온 것이다. 전체의 모수는 커졌으나 극 소수 지배층의 자기 지위를 잃지 않으려는 폭정에 사람들은 일할 동기를 잃고 정부의 지지기반은 약해져 간다.
늘 존재하는 “소수”
다수결을 했던 같은 유년기 시절의 또 다른 추억은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았던 일이다. 모래알을 바닷물과 함께 두 손에 담아 천천히 흘려내리면, 이내 흙들은 단단한 기초를 쌓아가며 위로 올라가게 된다.
지속적인 모래성의 성장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언제나 가장 위에 남아 있게 되는 모래인데, 설령 이를 지워버린다 해도 다시 성장 시키려면 꼭지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어찌보면 경제도 이와 같다. 규모가 커질 수록 나타나는 꼭지점의 높이는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 많은 모래가 성 안에 들어올 수록 면적은 넓어지고 높이는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Rule
소위 “가진 자”를 폄하하는 방법으로 다수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이는 앞서 말한 전체주의 선동자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정직하게 일하고 절약하는 소비로 자아실현에 매진한 성실한 이들을 모두 투기와 그릇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로 몰아간다면 누가 힘써 일할 것인가.
최근 이러한 언급을 통해 성실한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대통령과 일부 정치인들의 그릇된 행위는 분명 비판 받아 마땅하다. 정부의 역할은 “남의 것을 재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이룰 수 있는” 교육의 기회와 사회의 평가 시스템을 공정하게 운영하는데 촛점이 맞춰져야 한다.
하나의 커다란 모래성이 사회의 부담이라면, 오히려 누구나 모래성을 지어올릴 수 있도록 창의적인 기회와 자율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규모를 키우는 것 이상으로 체질을 다양하게 하는 것은 분명 건강한 경제구조에 보탬이 된다.
소수의 노력이 필요한 때
경제 규모가 커질 수록 꼭지점과 밑면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때,위에 있는 소수에게 요청되는 가치는 바로 아래에 있다.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리는 가치는 보이지 않는 것에 있음을 잊지 말고, 남에게 보이기에 집착하기 보다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지혜를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성공한 이들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또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던 사회시스템의 선 순환구조가 아닐까.
-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