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8 월 1 일 (주일) 늦은 밤 - 화창한 주일 날씨, 상쾌한 공기.

자기 PR 이 중요하고, 기존의 구습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가려는 세대. 어떻게 보면 우리는 “비판” , “판단”,  그리고 “저항” 과 같은 단어가 힘있고 멋있어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단, 튀고 봐야 할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책임보다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개성’이라는 전제 하에 머리에 물을 들이고, 찢어진 옷을 입었다. 일반적인 현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비판하는 일이 총명한 것으로 여겨졌고, 다른 사람이 모두 Yes 라고 할 때 No 라고 외치는 가치관이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이러한 저항과 비판을 위한 비판이 집단적인 투쟁의 양상을 띠기도 한다. 평균 연봉이 5000~7000 만원에 이르는 근로자들이 “생존권”을 외치며 스스로를 ‘노동자’라 치부하는가 하면, 가장 투표율이 낮은 대학생들이 “민주쟁취” 를 외치며 여전히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순종은 포기가 아니다.

순종은 학교 안에서 얌전한 모범생이 동그란 안경을 걸치고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노트위에 적는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순종은 역설적이게도, 자기의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좋은 기술이기도 하다.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건 바로 “순종” 할 때이다. 윗 사람이 시키는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 바보 같은 짓이라 할 사람도 있겠으나, 사실 그만큼 나의 가치를 조직 내에서 키울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때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또 다른 모습은 “윗사람이 시켜서” 라는 방패막이다. 이는 책임에 대한 일방적 회피가 아니라 내 스스로 배우고 있는 과정임을 인식하며 더 나은 가능성의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가능성이 많은 순종하는 자에게 책임이 지워질 상황은 흔치 않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

이제 성경 속에서 성령의 열매로 소개되는 ‘온유’의 가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말의 어원은 “야생마를 길들이는 일”에서부터 왔다고 한다. 거칠은 자연에서 넘치는 힘으로 자라난 야생마는 사람에게 길들여 지는 가운데 “순종”을 배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야생마가 자기의 힘을 잃어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야생마는 사람에게 길들여진 다음부터, 그 야생의 힘을 자기 주인이 원하는 때에 그 주인을 위해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온유” 라는 것이다.

“순종”은 지금 우리 속에 있는 능력을 버려야 하는 ‘복종’이 아니다. 주인되신 하나님께 나의 삶을 온전히 내어 드리고, 그 분이 원하시는 그 때에 내게 주신 힘과 능력을 발휘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아들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러한 자녀에게 복을 주시고, 그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

순종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사실 우리는 굳이 위 아래를 논하지 않더라도 “내 말을 잘 듣고 따라주는 사람” 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순종”이 모든 관계에서 통하는 가장 순전한 믿음일진대, 아직 개인의 욕심들이 모여 만들어낸 치열한 경쟁의식이 “남의 말도 잘 듣되, 내 말로 받아치는” 어려움을 돋보이게 한다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과 같이 ‘비판을 위한 비판’ 이 많은 때 일수록, 작은 일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실한 일꾼으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생각과 짧은 계산으로 나의 몫을 탐지하여 반론을 제기하기 보다, 일단 나 자신을 낮추고 배우는 자세로 윗사람과 웃어른을 공경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분명 장기적인 안목 속에 나의 그릇을 키우고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