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1 월 11 일 (금) 늦은 밤 - 아세요? 벌써 2002 년이 10 일 지났어요.. 휴우..
우리집은 105 호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 우리 동에는 한 층에 4 가구가 산다. 밖에서 보면, 집은 4 줄로 배열되어 있는데 마지막 집은 ‘5 호’ 인셈이다.
예전에 학교 친구가 살던 아파트는 아예 4 층이 없다. ㅇ.ㅇ 그리고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이라고 소개하는 삼성동의 학원 건물에도, 승강기 4 층 버튼은 “F” 라고 되어있다. 선생님들끼리는 “낙제 층” 이라고 우스갯 소리로 이야기 하는데, 숫자 ‘4’ 를 기피하는 이유는 대강 이렇다.
그 ‘이름’ 때문이다. ‘4’ 의 ‘사’ 가 ‘死’ 라는 것이다.! (다리 두 개를 건넜다. ^^)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의 프로야구 선수들 중 아직 배번이 ‘4’ 번인 선수는 본 적이 없다. 최첨단 과학이 득세하는 21 세기에도 아직 이 숫자 ‘4’ 에 대한 경계의식은 늦춰지질 않으니, ‘4’ 를 홍보할 좋은 방법이 없는 것일까..
가까운 친구들이 들려준 거짓말에도 흠칫 진지해 졌던, 나의 순박했던 초등학교 시절(^^), 내가 숫자 ‘4’ 에 자유하게 된 데에는 모든 일에 선한 모습으로 나아간 우리 형의 자유함이 앞서 있었다.
우리 형은 ㄱㄴㄷ 순으로 출석번호를 매기거나, 키로 출석번호를 매기거나, 무슨 일인지 학급 출석번호가 주로 ‘4 번’ 이었다. 나같이 옹졸한 아이가 이런 일을 경험했다면 정서적 불안감은 당연히 찾아왔을텐데, 우리 형은 어느덧 자기를 따라다닌 이 숫자 ‘4’ 를 좋아하고 있었다.
“형아야, 형은 몇 번 할래?” / “응.., 난 4 번.”
그게 우리 형과 내 대화였다. ㅋㄷㅋㄷ.. ^^;;
철부지 동생 용진이에게 ‘우리 형아’는 친구들이 들려준 근거없는 이야기를 하나님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전해줬다. 이런 육신의 형제를 내게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오늘 잠시 올라탄 좌석 버스에는, 자리마다 빼곡히 “오늘의 운세 700-xxxx” 광고가 붙어 있었다. 모두 작명, 재물, 연애, 성공, … 등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내일을 ‘사람들’ 이 전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갖혀 자유하지 못한 내 모습..
13 층에 살던 때. 어두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고 무서워하는 어린 내게, 역시 어렸던 우리 형은 순수한 믿음으로 찬송가를 뒤에서 불러주곤 했다. 지금도 형의 좋아하는 찬송 1 번째인 453 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
그 때의 고백이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음을 바라본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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