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네 도서관의 000번 장서 앞에 섰다. 컴퓨터를 좋아했던 시절, 자격증을 따기 위해 또는 그냥 컴퓨터가 궁금해서 자주 들리던 서가 번호 앞이다.
엑셀, 파워포인트, 워드 & 한글

"모든 버전 사용 가능". 세상에 이런 책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제목이 포괄적이었다. 첫 장의 글자들을 그대로 옮겨 보면, "회사에서 바로 통하는 엑셀 실무 파워포인트 워드 & 한글 모든 버전 사용 가능 2007 2010 2013 2016 Office365 현장밀착형 입문서". 그야말로 나 하나면 된다는 것 같았다.
한 권으로 퉁치는(?) 것 같아 다른 책들도 좀 더 둘러보니, 아쉽게도 요즘 나오는 컴퓨터 활용서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에 찾아 온 나도 컴퓨터 활용에 필요한 것들을 이제는 바로 그 컴퓨터로 찾고 있으니.
익숙한 것
직장생활 18년차. 아직도 MS 오피스와 한글을 쓸 줄 모른다면 스스로 뒤쳐져 특이점(Singularity)을 앞 당긴 것일테고, 굳이 인터넷의 수많은 도움말을 놓아 두고 이 두꺼운 책을 집어 온 것은 뭔가 잊은게 없나 싶은 미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빌려 둔 책을 집에 가져다 놓은지 열흘. "도서 반납 안내" 문자를 받고 비로소 다시 차에 들고 탔다. '이럴 줄 알았어. 왜 굳이 무거운 이 책을..' 출근 뒤 차에서 내리기 전 혹시 몰라 자리로 가져왔다. 책을 쓰고 편집한 분들도 바로 이런 장면을 기대하셨겠지? ㅎㅎ
새로운 것
아침 커피를 마시며 잠시 후루룩. 컴퓨터 도서 특유의 컬러 내지와 무게감을 즐기며 책을 펼치니 그래도 건질 것들이 보였다. 무엇보다 처음 이 책을 빌리며 생각했던대로, 늘 화면 속 그 자리에 있지만 별로 눌러보지 않았던 "도구 상자"들의 메뉴가 책 속에 열려 있었다.
잊고 있던 몇몇 엑셀 함수부터 파워포인트의 도형 병합과 워드의 스타일까지. 오피스95 시절 어설픈 마우스 클릭으로 시작된 활용법을 어느새 익숙하다는 핑계로 고수해 온 꼰대 용진을 확인하는데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건 25년 전부터 있던 기능인데'라는 교만함에 혹시 지금도 스스로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아는 것 다시 보기
잊어버린 것일 수도, 또 그만큼 필요 없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내가 "안다",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제로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 되돌아 봤다. '새로울 것 없는 과도한 기술 탓'이라는 변명은 잠시 내려 두고, 과연 내가 아는 부분이 그것의 전부인지 생각해 본다.
좋아하는 컴퓨터도 이 정도인데 혹시 사람들에 대해서도 매일 보는 얼굴이라며, 또는 가끔 듣는 소식에 역시 그 사람이라며 나 혼자 "안다"고 단정 짓고 있는 것들은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 속에 집으로 향하는 길. 도서 반납기 속으로 두꺼운 책이 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래, 앞으로는 대충 안다고 퉁치지 말자'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