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가방과 사람들로 가득한 저녁 공항 앞. 여독이 채 가시기 전, 저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 사이에서 한 버스 옆에 그려진 자동차 광고에 눈길이 갔다. “먼저 가겠습니다”


앞서 가기

가뜩이나 습한 날씨에 광고 카피가 보여준 예의 바른 문구는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희망을 웅변하는 듯 했다. 비행기가 멈추자 마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을 기다리는 것도 그랬고 ㅡ 사실 이후의 Immigration과 Baggage Claim을 하면 별 차이도 없는데.. ㅡ 먼저 가지 못하면 영원히 못 갈 것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왠지 마음 한 켠은 모두들 앞서야 된다는 생각 뿐인 것 같았다.

선두를 차지하고자 하는 우리네 열망이 지금의 ‘압축적 성장’, ‘Dynamic KOREA’를 이루는데 바탕이 됐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에너지를 내서 일단 결과를 내고 수정을 거듭하는 방법은, 비록 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IMF를 맞이했더라도 강한 체력을 더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제, 다시

하지만 이제는 앞서가는 사람들을 마냥 좇겠다는 전략으로는 곤란한 시점에 와 있다. 미국, 일본, 그리고 선진 유럽 사람들이 향유하는 여유 역시 중요한 가치 기준의 하나가 됐고, 먼저 매를 맞는 편보다 굳이 앞서 가야 하느냐는 질문도 고개를 드는 때가 된 것이다.

좀 다른 얘기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같은 노선 두 대의 버스가 ‘겹치기’로 도착해 뒤에 가는 버스에 오른 적이 있었다. 앞에 가는 버스는 어지간히 차이를 벌리기 위해 왠만한 정류장과 신호를 무시하고, 반면 뒤에 내가 탄 버스는 필요 이상으로 이를 지켰다. 그런데 막상 20 여분이 지나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정작 별 차이 없었다는..

은근과 끈기

효율이 앞서던 대한민국은 이제 효과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 단계는 “지성! 빨리빨리!”라는 유명한 히딩크 감독의 광고 문구보다 맨유 구단이 그의 부상 100% 회복을 기다리듯 준비된 성실함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에게 감춰진 한국 쌀밥의 비밀, ‘은근과 끈기’를 조금만 더하면 어떨까. 서로 앞서가려 불평하기보다 잘 익혀낸 찰밥을 입에 오물조물 돌려 단맛을 느끼고 삼키는 여유가 못내 그리운 시점이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