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1 월 19 일 (토) 저녁 - 따뜻한 겨울이네요. 주님 사랑 때문인가 봅니다.
(좀 긴 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동일한 글을, 대학부 자유게시판에도 올립니다.)
오늘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오랜만에 교회 후배들과 Tea Time 을 가졌다. 이화여대에 다니고 있는 후배들은, 졸업 자격 요건으로 필요한 컴퓨터 분야의 자격증 취득을 위해 내게 도움을 청했고, 토요일 저녁 강의에 앞서 잠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명이 함께 나누는 대화가 종종 그렇듯, 우리들의 이야기는 컴퓨터 용어와 네트워크 일반에 관한 내용에서 점차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서로 ‘나이가 들었다’ 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며 요즘 컴퓨터에 푹 빠진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한 후배가 과외로 가르치는 청소년은 총명한 지혜와 빠른 이해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늘 컴퓨터 앞에서 게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나 또한 얼마전 내 일기장에 ‘하루라도 컴퓨터를 하지 않으면 눈에 가시가 돋는’ 우리 학원 아이들을 나눈 적이 있었다. 도대체 인터넷과 게임이 무엇이길래?
난 이 글을 통해, 30 여분간 우리 모임에서 나눠진 고민들을 공개하고, 이에 대한 기독 청년들의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비록 정보화라는 커다란 흐름 앞에 필요없는 이의 제기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지켜 보기에는 어딘가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Game Philosophy
요즘 컴퓨터 게임 제작자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못해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Classic Scenario 는, “대전(對戰)” 이다. 서로 다른 두 명 이상의 사용자를 싸움 붙이는 것이다. 조금 편협한 관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실상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다.
예전 PC 게임은 주로 “컴퓨터와의 싸움” 이었다. 이미 프로그래밍된 컴퓨터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자는 반복 학습과 재시도를 통해 목표를 이룬다. 2 인용 게임이 등장했을 때에도 주된 시나리오는 ‘협력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때부터 싸움과 폭력이 전제되었고, 상대를 향한 정의로운 싸움으로 합리화 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사용자끼리 싸우게 하는’ 게임들을 보게 되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2, 철권, 버츄어 파이터 등의 다양한 비디오 게임부터,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포트리스2, 퀘이크 등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이용자끼리의 싸움을 중심으로 한 게임들이 사업 성공의 열쇠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얼마전 “게임에서 손을 뗀” 한 친구는 요즘 틈만 나면 다시 게임방에 간다. 그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 신실한 크리스챤이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 있어 하던 게임에서 보이지 않는 사용자에게 수 차례 “패배” 한 뒤,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날도 담배연기 자욱한 게임방을 택했다. 이유는, “승리” 하기 위해서다.
아쉽게도 우리 동네에서는 더 이상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의 구세대적인 사고관으로 요즘 아이들을 바라보는데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래도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놀이터가 청소년들의 비행 장소로 전용될 때면, 왠지모를 공허함이 느껴진다.
On Line 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정작 Off Line 놀이 문화를 잘 즐기지 못한다고 한다. “방 문화” 로 자리잡은 우리네 놀이 양식은, 일찍이 유행했던 노래방, 비디오 방에 더해 PC방을 만들었고, 이는 일부 언론에 의해 “국민 정보화의 총아” 로 각광받는 사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의 생일이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즐겨야 하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3 년만에 초고속 통신망 보급률 1위가 된 우리 나라. 자랑스러운 그 성과 앞에, 아직 그 도구를 이용하는 우리들의 책임과 수준은 기대 이하임을 인정해야 한다.
더이상 ‘이용당할 순 없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이용할 줄 안다’ 고 하지만, 실제로는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사용한다. 이는 인터넷 사용이 개개인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따르지 않으면 안될 흐름 속에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2.4.6.8. 이 아닌 2.4.8.16 의 기하급수적인 정보화 물결은 새로운 약품이 가져다 주는 효과 만큼이나 검증되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 우리 학원의 청소년들에게, 게임을 통해 느끼는 소망을 묻자 서슴없이 “프로게이머” 라고 대답했다. 아직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이들에게 좀 더 높은 소망을 요청한다면 무리일까. 난 그들에게 게임을 즐기기 보다, 직접 게임을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 이용 당하기보다는 이용할 수 있는 창의력을 심어주고 싶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건 어렵지 않겠어요.?”
내 전공은 기계공학이다. 하지만 2 년이 조금 넘는 군생활 동안 난 부대 안의 전산실에서 근무했고, 미군 사회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System 은 그 안에 있던 내게 그들의 ‘숨겨진 무기’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게임을 가장 잘 하는 청소년은 “한국”에 있지만, 그 게임을 가장 잘 만들어 파는 나라는 “미국” 이라는, 내가 모시던 장교님의 ‘오만한 지적’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비단 국가간의 경쟁이 아니라, 기독 청년된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영적인 싸움에서 봐야 한다. 영적인 민감성을 치켜세우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냉정히 바라보았을 때,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이 값진 도구가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쾌락과 타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싸움 속에 인터넷이 남용되고 있는가. 이 책임은 바로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 기독 청년들에게 지워진 것임을 직시한다.
대안
우리 교회의 ‘자유 게시판’은 간혹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인해 혼란스러워 지곤 한다. 그들은 “익명성” 이라는 무책임으로 거짓 사실과 감정적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는데, 문제는 이들을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다. 가령 교회에 대한 이해와 인지도가 낮은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무책임함이 적지 않은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Internet) 이라는 단어 속의 의미에서처럼, 이 도구의 “상호 작용” 을 통해 이미 상당히 부정적인 면으로 흘러 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기독 청년들이 “인터넷을 바르게 이용하는” 주인 의식으로 돌려 놓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가령 지난 주일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칭찬합시다”의 한 Theme 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기업들과 단체들은 그들의 홈페이지 공간안에 자유, 혹은 공개 게시판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는데, 이는 불건전한 정보나 무조건적인 비방이 자사 홈페이지에 등록될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만약 그와는 반대로, 그 공동체의 구성원과 사역들을 세워주는 글들이 가득하다면 어떨까?
비록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힘든 여건 속에서도 은혜의 산물과 감사의 필요를 찾아냈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며, 적어도 그리스도의 대사들이 찾아가는 Internet Society 에는 서로의 좋은 모습을 찾아내 격려하는 아름다운 흐름이 넘치길 소망한다.
이는 잘 훈련된 넓은 마음을 가진 우리 대학부 청년들에게 이미 가능한 일이기에, 이러한 새로운 흐름이 우리 가운데 일어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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