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20일 (수) 오후 - 황순원의 ‘소나기’ 가 생각나는 창 밖의 모습..
지금 난 3 시간 째 우리집 컴퓨터를 훈련시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내가 일해 온 회사의 인터넷 서버가 해킹을 당했는데, 아직 내 컴퓨터는 이에 대응해 싸울 환경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웹마스터와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내가 일하던 컴퓨터에 해커가 들어온 것.. 그리고 이렇게 해커의 흔적을 발견하고 적잖이 화가 치밀어 오른 기억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커는 뻔뻔스럽게도 자기만의 계정을 몰래 만들어 3-4 차례나 회사 웹서버에 침입했고, 계속 와레즈와 불법 자료로 계정을 잠식해가다 결국 공격적인 자세로 기존 데이터까지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제대 후 이제 회사일을 정리하고 있던 나는 거의 회사 웹서버에 관심을 멀리한지 오래였고, 결국 이 해커는 그동안 일해온 결과와 책임들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고 사라졌다.
그가 남긴 babo, 18 등의 가히 공격적인 메세지들은, 처음 해킹을 당한 내게 분을 삭히게 만들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점점 그 흔적들을 지우고 고쳐가는 중에 내린 결론은,
“이 녀석도 초보다.”
기껏해야 폴더 몇 개를 만들고, 자기 파일을 올리고, 다른 폴더에 있던 파일 몇 개를 지우거나 속성을 바꿔놓은.. 단순한 윈도우 사용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초보였다.
한 숨을 내쉬며 복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마음 속에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일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100 배, 아니 그 이상 중요하다는 것과, 아무리 시작이 반일찌라도 끝을 보지 못하면 완성은 아니라는 것..
그동안 부족한 능력에도 좋은 환경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일해온 내게, 이번 일은 인생에 잊혀지지 않을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어찌보면 앞으로 얼굴을 자주 대할지도 모르겠네..’
얼굴 없는 사람과의 싸움을 진행해야 했던 내가, 무의식 중에 내뱉은 말이었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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