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럼 우리 한 번 적어볼까?"

처음에는 그 말이 듣기 좋았는데, Dead Line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자 솔직히 답답해 화도 났다. 그래도 동양 스타일을 아는 중국인 친구가 함께 있었기에 다행이지. ^^

Brainstorming & Mind-map

작년 봄 일본의 히토츠바시. 우리 팀은 총 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초고령화 사회가 도래한 일본의 실버타운을 어떻게 활성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팀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였다. 첫 날 미팅에서 서로를 소개할 때는 일본의 야경과 밤 문화를 만끽하고 싶다고 했던 이들인데, 프로젝트가 시작된 뒤 애석하게도 우리 팀에 저녁은 없었다.

총 3가지 주제 각각에 대해 - 그 3가지를 도출하는데 이미 수많은 브레인스토밍과 마인드맵핑을 한 건 그렇다 치고 - 우리는 납기 전날 밤까지 화이트 보드를 가득 채웠다. '도대체 이렇게 해서 언제 발표자료를 만들지?' '일단 Get to the point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수많은 생각들이 혼자의 머리 속에 맴돌던 때, 과제 연구가 아닌 발표의 시급함을 생각해 보자는 나의 제안에 비로소 그들이 수긍했다. 그리고 그 화이트보드를 깨끗하게 지운뒤, 다시 발표자료 구성에 대한 Mapping을 그리기 시작했다.. ㅠㅠ

써 보면 알게 되는 것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웃픈 추억이지만, 당시 내가 배운 것은 초고령화 사회의 현실 속에서 사업의 어려움을 타개할 탁월한 해결책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풍성하게, 아주, 매우, 많이 들어보는 과정 속에 있었다. 같은 현실을 자기 입장에서 다르게 해석하고 그것을 서로 이해하기 힘쓰며 빼곡히 적힌 키워드들 사이로 새로운 줄기와 가지를 뻗어 또 다른 생각을 담아낸 바로 그 시간이 참 소중했다.

제 아무리 보기에 좋은 도구라도 실제 현장에 써 봐야 활용도를 파악할 수 있듯, 우리들 머리 속에서 흐르는 각자의 논리도 일단 꺼내 써 봐야 비로소 틈을 찾을 수 있다. 스스로는 찾기 어려운 틈도 비판이 아닌 다른 생각이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우고 비록 모두가 장님이어도 여러 명이 함께 이기에 서로의 생각들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팀 워크 상황에서는 오히려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위험한 존재일지 모른다. 내 생각을 적어야 다른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의 다른 생각을 읽어야 내 모습도 보인다.

함께 살아가기

코로나 덕분에 모처럼 가족들과 온전히 함께 했던 연말 연휴. 새삼 가족들 중 누가 누구를 닮은 것이 아닌 '4인 4색'임을 확인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반면 아직 그 다름에 대해 인정하기 어려운 내 모습과 같아져야 한다는 내 안의 주장이 그 다양한 색깔을 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게 마우스를 움켜 쥐고 있던 오늘 저녁. 퇴근을 앞두고 주어진 질문과 선한 동료들의 열심에 오랜만에 칠판 앞에서 마커의 뚜껑을 열고 글자들을 적어봤다. 혼자 보기 위해 시작한 것이지만 나름대로 정리가 잘 됐고, 내일 출근한 이들과 공유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 이윽고 빈 사무실에서 작년 봄의 추억이 떠올라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닌 서로 다른 생각을 더해 모두의 깊이를 키우는 것이 아닐까. 얼른 집에 들어가 나와 다른 이들과의 깊이를 더해야겠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