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의 교만이 새롭게 발견한 것을 "내가 만든 것"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물질 주의와 다원주의가 뒤섞여 벌어지는 이런 소유권에 대한 논쟁은 우리를 갇히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I know! I no?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 현실 덕분에 우리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졌다.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원인을 논하는 목소리와 댓글이 넘쳐나고, 서로 경험한 일들에 대해 실시간으로 공유가 진행된다. 이어서 결합과 분리를 통해 또 다른 지식은 탄생하고, 사람들은 다시 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보 기술이 이러한 과정을 놀라운 속도로 진행시킴에 따라 우리는 챗바퀴 돌 듯 이러한 일상을 좇아가야 하는데 여념이 없다. 매일 아침 쏟아지는 미디어의 뉴스를 들으며 출근[Resource], 시장의 데이터를 확인하고[Data], 나와 관계된 일들의 메일을 살펴보며[Information], 일을 하고[Work], 경험이 쌓이면[Experience], 지식이 되는[Knowledge], 소위 우리가 기대해 온 지식 정보화 시대의 공식이다.

You can "GO", if it's Necessary

그런데 애석하게도 위 공식에 "나"는 없다. 메일을 쓰고 블로그를 만들고 댓글을 달고, 집에서 보는 TV와 신문, 스포츠 중계에 외치며 내가 아는 것을 자랑하다 '간혹' 주목받기도 하겠지만.. 정말, 그것이 우리의 만족인가?

수 많은 미디어와 물질로 느끼는 '대리 만족'에 익숙해진 우리를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을지 사뭇 걱정되는 요즘이다. 정보와 소유의 충만과 always ASAP 스피드는 우리에게 절제와 참된 진리의 의미를 잊게 한다. "꼭 필요하면" or "정작 필요할 때" 움직이지 못하는 타이밍의 부재가 풍요로운 오늘 내 일상의 주적(主敵)이다.

회개하자

무슨 쓸데 없는(요즘 분위기엔, "복창 두들기는") 소린지 모르겠다 하겠지만, 이는 변함없이 필요한 가르침이다.

달나라에 가고 유전자를 복제한다 해도 결코 줄어들지 않은 하나님의 영역을 인정하자. 세상일이 의미없다는게 아니다. '건물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세상을 편가르는 믿는 자들 역시 깨어나야 한다. 우리 육체의 생명이 다할 때 후회 없도록 예측 불가능한 "나의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자.

내일부터 다시 분주하게 돌아갈 나의 일상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험하는 일과 지식이 참된 의미를 찾도록 우리의 지혜를 더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Proverbs 9:10, NKJV)"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