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때로 짜증 섞인 질문을 받을 지라도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보통은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다시 한 번 공손하게 전달하면 된다.

“언제?”

글쎄.. 생각해 보면 된다. 아니면 적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건은 없으므로 조금만 노력을 더해 논리적으로 맞춰 가 보면 된다.

“어디야?”

설령 위치를 잘 모를 지라도 기억나는 메뉴와 주변 거리의 모습을 기억해 본다. 이도저도 아니면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내가 갈 수 있는 강력한 해결법(!)도 있다.

“누구지?”

서로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만남과 기다림의 문제다. ‘좀 그런’ 사이에 있는 사람이 ‘좀 그런’ 관계에 있는 대상을 묻는다면 불쾌할 수도 있겠고.. 솔직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왜?”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질문이지만 ㅡ 사실 대답하기도 쉽지 않다 ㅡ 행동과 사건 양식의 동기라는, 인간만이 본능을 거슬려 고민할 수 있는 선택적 사항과 내면적 진리에 대한 의문사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질문이기도 한데, 이는 그 대답이 사람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일 거란 생각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배려이기도 하고, 이를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의 판단과 여론의 관심을 현상 자체에 몰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사용하지 않고 본능에 충실한 경우 사실 마땅한 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다만 자기 성장을 위해서라면 꾸준히 자신에게 꼭 던져볼 필요가 있다. 행동에 앞서, 하나님과 이야기 할 때.. 등등, 필요와 유익이 많은 질문이다.

“어떻게..?”

유일하게 따블유우 아닌 엣취! 를 들이대고 있는 이 녀석은, 사실 그 짧은 무성음만큼이나 사람들의 호감을 온 몸에 받고 있는 현대 사회와 미디어의 경이로운 대상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왜?” 란 질문의 공격성향 없이도 ㅡ 어찌 보면 그럴 듯한 ‘대의명분’을 스스로 정한 채로 ㅡ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에만 치중하게 하여 사람의 정신을 팔리게 한다.

먼저 해 본 사람의 경우는 아는 척하기도 쉽고, 생색내기에도 좋으며, 특별한 기술이 없는 ‘운발’이었음에도 당시 상황을 주도한 척 할 수 있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는 피곤하니까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 지를 먼저 가르쳐 버리는,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구도에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대답이 결과로 나올 뿐이다.

5W 1H

‘오늘’ 오랜 만에 찾은 ‘대형서점’의 ‘베스트 셀러’는 온통 ‘방법’을 찾아 주겠다는 제안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런 ‘시대적인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방법론에 집착한다. 어느 영화 대사처럼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이야기’ 일지 모른다. 어느 정도 사실일 수도 있고. 하지만 바로 그 “방법”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 16:9, 표준새번역)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