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길. 돌아 오는 내내 비행기 안에서 한 아이가 유창한 영어 발음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 시선은 신문을 향했지만 어깨 너머로 들리는 말인즉슨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편의점에서 뭘 사먹고’.. 한 참 떠들던 꼬마 친구는 급기야 옆 자리에 앉은 큰 아이에게 우리말로, ‘영어로 얘기하니까 형은 잘 모르나 보다’ 고 한다.
어린이 어학연수
어린이 어학연수가 붐이다. 요즘 학교는 외부 교육을 위해서라면 2 개월까지는 선생님의 동의 하에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을 인정해 준다고 하니, 충분히 부모님의 교육열을 달굴 수 있는 제도적 바탕도 마련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목적 의식 없는 외국어 교육이다. 단순히 우리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쉘라쉘라를 잘 한다고 해서 앞서간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막연히 다른 사람이 시키고 옆집 아이가 잘 하니까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린 친구들이 어학을 습득하는 효율은 엄청나다. 불과 몇 달의 생활 동안 나 같은 국내파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유창한 생활 어휘와 정확한 모음 발음을 갖춰서 돌아오니, 다음 세대가 넘어야 할 세상의 크기는 지금보다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기에 더욱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외국어 스트레스
영문학을 전공한 선배가 ‘영문도 모르고 들어갔다’며 후회섞인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이공계 학생들이 고시와 의대 재입학에 매달리듯, 어문계 학생들의 타 전공 따라잡기 현상 또한 만만찮은 모양이다.
특별히 리쿠르팅을 위해 대학교를 찾을 때면 우수한 어문계열 학생들의 자기 비하에 놀랄 때가 많다. 토익 만점에 토플 상위점을 훌쩍 넘은 학생이 다가와 ‘뚜렷한 기능이 없어 고민’이라고 하니.. 아마도 상경/공학 전공에 토익 만점 성적표를 들고 온 동기생 때문이었으리라.
언어와 문화
외국어 공부. 이것만큼 지겹고 힘든 일도 없다. 하나를 끝내면, 다시 하나가 찾아오고, 그러다 보면 잊혀지고 하는 것이.. 서점마다 새 책이 잔뜩 쌓이고, 이미 내 책꽂이에 수북한 외국어 학습지들이 웅변하고 있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하기에, 외국어를 못 한다고 또는 외국어만 할 줄 안다고 고민할 이유가 없다. 언어 학습을 통해 중요한 건, 예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게 되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기껏 외운 단어, 12년 교실 영어로 힘들게 건넨 첫 인사에 “왔어? (What’s up?)”, 단 두 마디로 화답했던 미군 룸메이트의 얼굴이 떠오른다. ^-^;;
외국어와 또 다른 영혼
언어는 기능적 수단으로 자격증 속에 갖히거나, 학문의 대상으로 두꺼운 책 속에 한정될 수 없는 문화다. 우리말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의 일원이 됐다면, 또 다른 언어(Second Language)가 나에게 확장해 줄 또 다른 세상, 그리고 내 안에 자리할 또 하나의 情 (Second Soul)을 기대하길 소망해 본다.
-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