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 5 월 18 일 (주일) 늦은 밤 - 참 좋았던 날씨.
오랜만에 사랑하는 교회 선생님, 그리고 후배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예전과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식사를 내가 쏜(!)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 교회 대학부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뒤늦은 감사 표시이기도 하였고, 왕으로부터 거금을 빌린 신하가 작은 돈을 빌려준 자기의 종에게 생색내는 것과 다름없는 잘난체(!) 이기도 하리라.
한동안 이번에 새롭게 대학부 찬양대 지휘를 맡은 정진이 형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적인 자리에서 대학부 찬양대를 위한 진지한 고민을 나눠주신 형은 이어서 이런 말씀을 전해주셨다.
“하나님께서 내게 모든 것을 쏟아 부으라고 하시는 것 같아. 그게 참 힘들고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걱정도 되는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나를 비워내고 나면 다시 채워주시더라구.”
아직 기초가 잡히지 못해 안정되지 못한 공동체를 섬기는 정진이 형의 고백에는 실로 놀라운 뜻이 담겨 있었다.
“예전에 중등부 지휘를 할 때는 그래도 첫 해만 넘기면 그동안 쌓아놓은 것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겠다.. 그게 편해겠다.. 하는 생각도 있었어. 그런데 주님이 원하시는 섬김은 그렇게 쉽고 편한 것이 아니더구나..”
이어지는 형의 깊은 고백을 들으며, 나 또한 이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Zero Base,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행위는 우선 모든 것을 비울 때라야 가능하다. 내 욕심과 이기심을 가득 손에 쥔 채로 하나님께 간구한들 무엇을 내 손에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헌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제자들이 그들의 배와 그물을 버렸듯, 우리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Zero Base 와 유사한 표현으로 물질 문명 사회가 만들어 낸 Zero Sum 게임이 있다. Negotiation Skill 로 종종 사용되는 이것은 내가 건넨 만큼 (혹은 잃은 만큼) 그 만큼의 것을 얻어 결국 서로의 가치 교환이 공평하게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많은 Business 논리와 인간 관계가 이러한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러한 “Give & Take” 는 적어도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는 철저한 주종관계로 하나님을 대해야 하고, 우리의 순종이 곧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급을 월등히 더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약할 때 강함 주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오늘도 바벨탑을 올리기에 급급한 인간들을 권고하시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숨을 쉰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서 내게 허락된 사랑을 진정으로 누리고 싶다. 그렇게 받은 사랑인만큼 ‘이해한 만큼 이해받기 원하고’ ‘준 만큼 돌려받기 원하는’ 나의 잘못된 욕심과 혼자만의 성냄을 다스리고 싶다. 진정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싶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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