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10 월 20 일 (수) 늦은 밤 - 밤 늦게 돌아오는 길. 밤 하늘의 별을 봤다.

아침마다 회사 앞에는 3 대의 트럭이 나란히 선다. 즉석 샌드위치와 김밥을 팔고, 때로는 따뜻한 원두커피 한 잔을 서비스로 주는 트럭 곁에, 징그러운 비둘기들도 떼지어 살고 ㅡ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Anyway, 나 또한 그 트럭에서 김밥을 매일 샀다.

이름하야, “김밥 소년”. 매일 반복되는 김밥들고 출근하기에 보다 못한 신 대리님이 붙여주신 별명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 번 같은 트럭에서 1500원 하는 참치 김밥. 김밥의 종류도 맛도 변하지 않지만, 비슷한 시간대에 내 자리에 배달되는 우유 하나와 회사 앞에서 사들고 온 김밥 한 줄이 바쁜 아침에 내 뱃속을 달래주는 벗이된지 오래다.

그런 내게도, 드디어 변화가 찾아왔다. 냉엄한 세상을 웅변이라도 하듯, 회사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김밥 천국+세상+마을 등등.. 24시간 김밥 집들이 줄지어 서며 언제부턴가 회사 앞 트럭 3 대는 자취를 감췄다. 급기야 어제는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 길에, 늘 그 자리에서 풍족한 배를 채우던 비둘기들이 드디어(!) 비둘기 다운(?) 삶으로 돌아간 장면도 보았으니.. ㅡ 모래알을 먹고 있었다. 암, 그래야지.. ^-^;;

그런데 막상 트럭이 사라지고 나니 인근 김밥집을 이용한다는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평소같으면 통근버스에서 내려 회사 바로 앞에서 김밥을 사갖고 갔을텐데.. 이제는 왕복 걷기에 걸리는 시간만도 510 분. 아침에 이만한 시간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

그래서.. 드디어 우리 어머니가 행차하셨다. 이른 아침, 새벽부터 분주한 아들을 위해 김밥을 마시길 근래들어 계속.. 지난 주부터 시작된 우리 교회의 특별 새벽 기도에 참석하시면서도, 늘 잊지 않고 김밥을 말아 식탁위에 놓고 가셨으니.. “김밥 소년” 아들의 명예를 지켜주시기 위한 어머니의 사랑은 이 짧은 글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매일 변함없던 김밥에 그 때 그 때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 어느 날에는 어머니가 깜박해서 단무지가 없고, 어느 날에는 전 날 저녁 반찬하고 남은 LA 갈비가 김밥 속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그 때 그 때 냉장고 반찬들로 채워진 김밥.. 음.. 맛있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근데 요즘엔 김밥을 너무 크게 썰어주시는게 또 문제다. ㅡ 진짜 문제는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만 늘어가는 내게 있다는 걸 알지만서두.. ㅡ 오늘 밤 은근슬쩍.. 기회를 잡아 어머니께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어머니, 김밥이 참
맛있는데요오~”
“응?”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
“있잖아요, 어제 오늘 김밥은 너무 커요.. 그냥 한 줄에 한 13 개 정도 나오게 썰어주시면 안될까요.?”

(잠시 생각에 잠기신 어머니.. 그리고 이내,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넌 입이 크잖니.”
“(호곡..) 엄마.. 그래두.. 입에 김밥을 넣으면 아무 말도 못한단 말이에요.”
“원래 밥 먹을 땐 얘기하는 거 아니다.”
“(잉… ㅠㅠ)”
“그냥 꼭꼭 씹어서 잘 먹으렴. 우유 하나 같이 먹는 거 잊지 말구.”

어머니는 얘기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 많은 걸 잘 알고 계셨다.

괜히 머쓱해진 탓에,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 하고 말 없이 있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내일 아침 김밥을 위해 어느새 냉장고 안에 가득 준비된 김밥 재료..

어머니는 내일도 아들을 위해 김밥을 마시고, 교회에서 기도하시겠지..
김밥 소년 아들을 위해. 분명 내일 김밥은 13 개로 나뉘어 있을게다.

난 참 행복한 놈이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