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10 월 12 일 (토) 아침 - 흐린 날씨, 오후부터 비가 올듯..
논산 훈련소에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난 카투사 지원병에 나이도 좀 있다하여 소대 선임병이 되었다. 뭐.. 사실 왜 선임이 됐는지는 아직도 국방부 만이 알고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우리 소대에는 (희)노애(락)을 동고동락할 교관이 소대장을 포함해 3 명 있었다.
그 중 가장 막내 교관.. (물론 훈련병인 햇병아리들에게 그 막내는 엄청 높은 계급이다) 김종학 상병. 그는 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역시 대다수가 마산, 창원에서 온 훈련병들을 몰아 세우곤 했다.
가령..
“내는 임마 한 문장 말하는데 욕이 두 개 이상 안나오면 직성이 안풀려, XX XX들아.”
이게 정말 기분 좋을 때 그가 훈련병들과 친해지기 위해 말한 ‘평서문’ 이었으니..
한편 이 사람은 또한 적당한 여유를 부릴 줄 아는 군인이었다. 소대장님의 부름에도 관등성명을 “네! 상병~ 학!” 이라고 자기 이름의 끝자만 대던 모습은 훈련병들에게 괜한 풀어짐을 전해주기도 했지만.. 가령 어설픈 흉내라도 내다가 걸리는 날엔 호되게 야단맞을 심산이었으리라.
그래도 다행인건 그 무서운 김종학 상병이 내 나이를 알게 되자, 은연 중에 친구라며 대해준 사실이다. (그도 1977년 5월생이었다), 그의 자리를 존중하며 쉽게 대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소대원들의 어려움을 말하기에는 가장 편한 상대로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입영했던 1999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김종학 교관과의 6 주를 떠올리는 이유는, 문득 그에게서 들은 “사랑 타령” 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용접 작업을 하던 날, 나는 그날 오후 훈련에서 열외되어 “기계공학 전공” 이라는 이유로 부대 안의 망가진 시설들을 수리하고 떨어진 철조각을 붙이고 있었다. 이를 책임지던 김종학 상병. 불쑥 내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니도 참.. 편지 안오더라. 사회에서 여자 친구도 하나 안만들고 뭐했노?”
그냥 미소지은 뒤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 차디차게 보이던 교관이 말을 이었다.
“실은.. 내가 요 몇 주전에 여자 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편지를 받았거든, 지난 번 휴가 때 싸우고 들어온 것이.. 결국 서로 풀리지 않아 이리된 모양이다. XX.. 부대 안에 있으니 나가서 화도 풀어주지 못하고, 도대체 생기는 오해는 왜 이리 많은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 벌써 5 년째인데, 이리 쉽게 끝나는기다..”
갑자기 용접 작업실 옆으로 한 무리의 훈련병들이 군가를 부르며 지나갔다.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김종학 상병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젠장.. XX. 내 애인도 내가 못 지키는데, 내 나라를 어이 지키노…”
그의 입에선 어느새 긴 담배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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