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와 준이가 한국으로 떠난지도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이제 곧 둘째 현이와 함께 독일로 돌아올 시간이 다가왔는데, 밀린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냉장고

아내가 떠나며 미리 내가 먹을 것들을 남겨 놓고 가겠다고 한 터였다. “아냐아냐, 괜찮아, 어차피 주중에는 집에서 식사도 못할텐데”. 독일에 와서 이제 갓 2살이 지난 준이와 함께 처음 귀국길에 오르는 아내의 분주한 마음을 돕고자 ‘필요 없다’고 했다. ㅎㅎ 덕분에 좋아하는 피자, 햄버거, 라면 3 종 세트를 지금도 먹고 있지만.. ^-^ ㅋ..

혼자 지내려다 보니, 주방에 있는 작은 냉장고와 식당에 있는 김치 냉장고의 내용물을 합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 일은 시작됐다. (독일은 전기 요금이 꽤 비싼 편이다. 한국의 3~4배라고도 하는데, 요즘 원자력 발전을 중지하며 더욱 크게 인상되는 중이다)

내용물

와.. 가관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물론이고, 그냥 맛있겠다 싶어 집어 온 각종 식품들이 냉장고 구석 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흠~ 이건 내가 먹어야지’, ‘요것도 있었네’. 호기심 만발, 의기 양양. 버릴 식품들을 모으고, 내용물을 비운 용기들을 설거지 하며 ‘이렇게 먹을 게 많이 있었네’라고 뿌듯해 했다. 두 달 전에.

그리고 이제 가족들이 들이닥치기 전 마지막 주말. 그 때 비어진 냉장고의 문을 여는 순간. 아차차차… ㅠㅠv 전원이 꺼진 냉장고의 문을 2달 간 닫아 두고 숙성시킨 상태는 가관이었다. 가전제품 매장에 진열된 냉장고들이 내용물도 없이 가끔 왜 돌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도 좋을터. 각종 곰팡이가 살짝.. 먼지처럼 선을 그리며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청소

결국 오늘 저녁 일을 벌렸다. 그래도 독일이 세제는 용도와 종류별로 확실하기에. 살균제를 먼저 뿌려 대응하고, 락스 용액을 물에 풀어 수세미로 삭삭.. 이후에는 다시 마른 행주(깨끗한 걸레)로 물기를 닦아 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칸칸이 틈틈이를 공략해 들어온 곰팡이와 한 바탕 하는데는 손이 많이 갔다.

한 3040분 정도나 지났을까. 음 나름 깨끗한 만족감. 청소를 하며 별별 생각을 다했었다. 냉장고 청소 방법을 적어둔 인터넷 블로그를 찾아볼까.. 요 부분은 어떻게 닦아내야 할까.. 왜 냉장고 디자이너는 유리판을 플라스틱에 이렇게 끼웠을까 등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이 “먹을 것”을 넣는 공간이 청결해진 것 같아 다행이다.

냉장고 청소

후기

개인적으로 냉장고 청소가 아내의 일상을 이해하는 소중한 도구가 됐다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하면, 늘 먹을 것을 챙기는 밀림의 암사자 처럼 ^^, 아내의 장보기와 나의 끼워넣기가 만나 지금의 냉장고 내용물을 채워넣었다. 아내의 장보기는 분명 내 것보다 현실에 충실했고, 준비성이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결국 두 달 전에 발견한 것들, 아직도 그대로 있다. ㅠㅠ 로망 아닌 절망.

냉장고 청소를 도우실 남편 분들에 대한 조언; 남성이 자동차, 카메라라면, 여성은 가방과 냉장고인 듯 싶습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군대 신병 때 마음으로 고무장갑 끼면 생각보다 뿌듯합니다. ^-^ 단, 아내의 가방을 들여다 본다고 생각하시고 내용물에 대해서는 가능한(절대!) 아내에게 피드백 하지 마세요~ 조심스럽게, 버릴 것은 제외하고 내용물은 있던 자리에 다시 돌려놓는다는 자세로 임하시면 제대로 반응이 올 것입니다. 나름 얻게 되는게 분명히 있습니다. ^-^/ 남편분들, 홧팅입니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