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평일 저녁 학교 공부를 위해 나선 길. 잘 알려진 독일 브랜드 차량 두 대가 신호 변경을 무시하고 서로 가려다 결국 멈췄다. 자칫하면 만만찮은 접촉사고로 고충이 커질 뻔 했던 상황. 두 차량의 운전자는 뭔가 다른 의견이 있는 듯 서로 창문을 열었다.

10:0

“여긴 사고 나면 무조건 10:0 이야”

우리나라와는 다른 독일의 운전 환경을 설명하는 선임 주재원의 얘기를 처음에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막상 주재 기간 중 내 차를 들이 받은 차량의 보험회사가 여지 없이 100%의 수리비와 감가상각비를 입금해 주는 일을 경험하고 나니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내내 독일 교통규칙의 우선권(예를 들면 Rechts dann Links; 신호가 없는 교차로에서는 오른쪽에서 진입하는 차량에게 우선권이 있음)에 주목하게 됐다.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명 무실한.. 역삼각형 모양의 “양보(Yield)” 표지판 또한 ‘지금 차선에는 우선권이 없다’는 뜻이기에 자칫 잘못했다간 본인 과실이 100%다. 여기에 우선권 표시(노란색 마름모)가 있는 옆 차선의 차량들은 당연히 정규 속도로 달려온다. 그들이 양보를 안해주는 것이 아니라, 양보 표지가 있는 차선의 차량이 당연히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우선권이 주는 유익

처음에는 뭐 이래? 싶었지만 사실 도로 위에서 우선권이 주는 유익은 생각보다 무척 크다. 가령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서 진입하는 차선들의 차량에게 우선권을 줌으로써 해당 도로의 통행량을 보다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고, 반대로 교통량을 우회시켜야 할 도로에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해당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확립된 우선권이 주는 유익은 많고, 물론 그 중 가장 큰 유익은 앞서 언급한 사고처리라고 하겠다. 때로는 양보하려던 사람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정서적 비용을 최소화 하고,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사실 6:4 이든 7:3 이든, 전체 비용 100이 지출되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이 10:0으로 판정하면 우선 모든 운전자가 본인의 과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할 수 있고, 해당 보험사도 지출되는 보험금의 심사를 더욱 명확히 해야하는 책임의 크기를 더할 수 있다.

아우토반에서 무제한의 속도를 즐길 수 있는 이유

“형, 독일은 이제 원자력 안 쓰고 다 신재생 한다면서요” “그래, 맞아. 하지만 전기요금이 우리보다 2배 넘게 비싸지.. 우리도 그걸 받아 들일 준비가 된걸까?”

언제부턴가 독일의 상품이나 정책들이 제품성능이나 사회주의 관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을 본다. 하지만 그들의 좋은 제도와 성과는 무엇보다 먼저 이러한 사회적 비용에 책임을 지는 국민들의 노력 위에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독일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에 없는 두 가지, (일부 구간의) 속도 제한과 (전 구간의) 통행료는 그냥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선뜻 눈 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이는 통일도 실제적으로 소요될 사회적 비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먼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이전의 서독 국민들이 아직도 납부하고 있는 통일세와, 이를 갖고 서독지역 아닌 동독지역에 우선순위를 두어 더해진 인프라 확충, 그에 따라 잘 드러내진 않지만 여전히 거리감이 있는 양쪽 국민들의 차이와 같은 부담이 현실적인 “책임”으로 자리할 때 우리 모두가 한 걸음 더 도약하는 일이 되리라 믿는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