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는 잘 인식하지 못했는데, 개인 디바이스와 사물 인터넷이 많은 영역들을 더해가며 확장되는 ‘Everything Connected’에 잊혀진 또 하나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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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식

주로 범죄형태의 동인을 찾을 수 없을 때 쓰는 ‘묻지마’란 표현이 혹시 사회 현상으로 퍼져가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빅데이터로 사람들의 검색어들을 모아보고 행동양식들을 추정할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물어보지 않는다.

대신 찾아본다. 가령 오늘 내가 처음 가 본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의 위치도, 찾아가는 길도. (낙성대 쪽이더군.! ㅋ) 예전 같으면 서울대입구나 그래, 낙성대 앞에서라도 한 번쯤은 ‘이쪽 맞나요.?’, ‘이 버스 가나요?‘라고 물어봄 직한 행동들이 사라졌다.

스마트기기 광고에서는 가야할 길을 마치 자동적인 것처럼 찾아주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동안 방향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과 이로 인해 소모된 열량이 표시되는 화면을 fancy 한 것처럼 전한다.

스스로 찾아보기

오랜만에 뵌 독일교회 목사님께서 우리나라 방문 중 지하철 역에서 열차 방향을 묻자 서 있던 너댓명의 사람들 모두 ‘마치 왜 묻냐는 듯’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기억났다.

물어보는 사람이 바보 같은, 스스로 찾아 그럴싸하게 해내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다 못해 무능해 보이게 된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면 나 역시 ‘내게 물어본 건가’, 아니면 ‘아직 그 많은 대중교통 앱을 아직 모르나, 그냥 인터넷 찾아봐도 될텐데’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훌륭한 답은 뛰어난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는 교육계의 오래된 격언을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묻는 것’이 사라지고 ‘스스로 찾아 보는 것’이 일반화된 세상은 분명 슬픈 일이다. 이후 더 많은 미디어들과 웹 서비스들은 마치 그들이 ‘진리인 양’ 사람들을 들었다 놓았다 할 것이다.

지혜, 그리고 진리

그런데 과연 수많은 인터넷의 백과사전이 언제 우리의 지식으로 자리한 적이 있던가. 어느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의 한계인지도 몰라도 컴퓨터를 통한 사이버 교육은 지식이라기 보다 기능과 호기심 학습법일 뿐.. 미안하지만 학원 강사님들의 반복된 실제 강의 시간을 줄여준 것 말고는 정작 학습자에게 큰 효과가 없어 보였다.

설령 그렇게 지식을 갖추는 개인들이 여기저기 탄생한다고 해도, 과연 인생에서 접하게 되는 셀 수 없는 경우들과 조건들을 모두 입력해 나에게 필요한 ‘지혜’를 누군가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면 수많은 누군가들이 양산해 낸 빅데이터 속에 과연 지혜는 조개 속 진주처럼 찾아낼 수 있는 것일까.

시대가 더 빨리 흘러 새로운 21세기의 지혜가 데이터 속에서 발견된다해도 결정적인 숙제는 또 하나있다. Veritas, 바로 “진리”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 온 많은 사람들이 결국 또 하나의 데이터만 더하고 말았다는 것은 어럽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휘발성 정보를 향한 계속 클릭으로 시간을 보내던 언젠가의 나를 돌아보며, 변치않는 진리를 향한 지혜를 구하는 두드림을 전하고 싶어진 오늘이다. 오랜만의 하루살이.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