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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익숙한 일이 됐을 법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을 연변이라는 낯선 땅으로 파송해 드릴 때면 가슴 한 켠에 일어나는 많은 질문과 그 분의 대답 속에 뜨거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형님의 결혼, 그리고 계속되는 부모님의 섬김

"정말 큰 일을 끝내고 가서 보람이 있구나. 그래도 네 아빠랑 같이 가서 눈물이 나지 않아 다행이다."

공항 터미널에서 어머니가 전해주신 말씀은 '아무리 너희들이 자라도 항상 기다려지고 보고 싶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고 차 안에서 나눈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맥을 같이 하고 계셨다. '아무리 제가 노력해도 부모님이 몸 소 보이신 섬김과 순종의 삶은 늘 그 이상'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의 가정이 새롭게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지는 과정 동안 또한 부모님이 보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밤을 잊고 기도하심도 일부분이나마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형의 결혼 생활이 부러움을 넘어서 내게는 질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ㅡ.ㅡ;)

아버지 생신


바로 어제는 또한 아버지의 예순 네 번째 생신이셨다. 그곳을 향해 이 곳에서 늘 힘써 일하시다가 이제는 지리적으로 그 위쪽에 가서 다시 힘쓰시는 모습. 내 짧은 믿음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이뤄질 귀한 믿음의 역사가 아버지의 세대에 기록되길 원하지만, 언제 쯤 완전히 들어오실 것인지를 여쭙는 내게 아버지의 대답은 늘 같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까지."

아버지 생신 날 이른 아침, 온 식구가 모여 부른 찬송가 442장(옛 499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이 떠오른다. 3절만 문자 입력으로 다시 부르기.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