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 모처럼 밀린 생각들을 정리해 내느라 PDA 와 키보드가 분주하다. 분주한 일상에서 겨우 찾게 된 장소가 오랜 시간 갖혀 있는 비행기 안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시간이다.
영원한 연인
공교롭게도 이번 출장 기간 중에 내 생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핸드폰 로밍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래도 생일이란 생각에 지역을 바꾸고 켜보니.. Atlanta에서는 문제없던 서비스가 Orlando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덕분에 부모님께 시간 맞춰 드리려 했던 감사 인사도 놓쳐버리고.. 결국 이 곳 시간으로 생일 아침, 부모님이 계신 그 곳 시간으로 생일 저녁 기회를 잡아 인사를 드렸다.
“응, 엄마는 참 감사하지. 이렇게 귀한 모습의 아들을 우리 가정에 보내주시고, 엄마로 하여금 많은 기쁨과 은혜를 누리게 하시니 그저 그 분에게 감사드릴 뿐이란다. 용진아, 네가 있어 참 고맙고 감사하다”
종교적인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통화에도 어머니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못난 아들 칭찬에는 변함이 없었다. 멀리 중국에서 학교를 섬기고 계신 부모님의 저녁 일상에는 다른 학생들이 늘 함께 하고 있었지만, 거리의 차이에 앞서 If.. 란 핑계로 일관하는 내 모습이 마냥 부끄러울 뿐이다.
아름다운 소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고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아버지 진갑잔치 때는 어떤 가족들보다 예쁜 모습의 어머니가 마냥 좋아 그 손을 놓지 않으려 했던 기억도 있다.
아파트 베란다와 거실에는 늘 작은 바이올렛 화분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머니의 세심한 관심과 사랑에 화답하듯 여러 빛깔의 꽃으로 인사하던 친구들을 어린 내게 어머니는 하나하나 소개해 주시곤 했다.
혼수로 마련해 오셨다는 작은 재봉틀은 지금도 베란다 한 켠을 지키고 있는데, 어머니의 솜씨는 오래된 쇼파에도, 정리되지 않던 내 방에도 새로운 친구와 도구들을 자리잡게 해주었다. 비록 중학교 때부터 키운 강아지, “죠이”의 침공(?)으로 인해 많은 쿠션이 뜯어져 나가긴 했지만서두.. ^-^;;
음악과 찬양
Marantz 오디오의 위대함과 LP 레코드의 매력에 빠져든 것도 어머니 덕분이었다. 단지 “기계에 대한 관심”으로 거실 오디오를 들여다 보던 어린 용진이에게 어머니는 그 속에 숨겨진 ‘소리’를 느끼게 해주셨다.
“이렇게 좋은 오디오를 잘 들을 생각도 못했는데, 용진이가 틀 줄 알게 되니 엄마도 옆에서 함께 들을 수 있어 좋구나”
시계를 보고 시간을 읽는 방법보다 어린 내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사건. 아침이면 일어나 뜻 모를 음악 LP 판을 걸어놓고, 93.1 Mhz 란 채널을 알게 된 것도 바로 그 때였다.
어머니가 집안 일을 하실 때면 항상 부르시는 노래는 다름아닌 성가곡. 문제는 어머니의 파트가 알토라는 것인데, 멜로디가 아닌지라 때로는 이해가 안될 때도 있다 ^-^. 어머니의 찬양 소리에도 주방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빼놓지 않고 준비되어 갔다.
하나님 말씀
내가 귀찮아 했던 어머니의 잔소리 중 하나는 “성경말씀 다시읽기”. ㅠㅠ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절대 교회에 가지 않았을 내 모습에 많은 반성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정예배 때면 늘 어머니께서는 함께 봉독한 말씀을 다시 읽어 주시기에 바쁘셨다. 제발 이 좋은 말씀의 뜻을 되새기자며 또 읽고, 또 읽기를 수 차례.. 사춘기 시절 적어도 난 어머니의 잔소리 중 “성경 말씀 잔소리”를 제일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겨울 어머니께서 잠시 우리 집에 머무시던 시간에도 늘 말씀은 떠나지 않았다. 연로함과 연약함이 더해지시는 할머니 방에서는 늘 어머니와 할머니의 말씀 대화 소리도 들려온다.
“어머님, 잠언 19 장 다시 한 번만 함께 읽어요”
“그래, 내가 소학교 다닐 때는 줄줄 외웠던 말씀이야..”
“성실히 행하고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음이라…”
겸손과 섬김
내가 어머니의 모습에서 아직 닮아가지 못한 소중한 가치는 겸손과 섬김에도 있다. 가게 일을 시작하시면서 어머니의 일상은 그 누구보다 분주하고 격렬하게 바뀌었지만 늘 그 여유와 사랑을 잃지 않으셨다.
“엄마가 가게 일을 한다고 용진이가 잘못하면 안돼.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더욱 건강하게 자라야지.”
최근 중국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걸려온 어머니의 목소리도 같은 내용이기는 마찬가지.
“용진아,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에서도 그 분의 보호하심 아래 오히려 건강하고, 세상의 지식에 앞서 그 분을 아는 지혜에 열심이었던 것을 잊지마. 엄마랑 떨어져 있다고 그 분 아들로서의 모습을 잃어선 안돼.”
가족을 향한 넘치는 섬김 이후에 또 다른 세상을 향한 배움과 섬김의 경주를 계속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 또한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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