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2 월 21 일 (목) 밤 - 창문을 열었는데, 아직 춥더라구요. 다시 닫았어요..
지난 주일. 내 가까운 친구 찬주는 대학4부 비전커리를 인도하시는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목사님,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은 자꾸 우리의 기준을 높이고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하고, 솔직히 교회에서의 가르침도 많은 부분은 세상의 지식 기반 사회와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고난’ 과 전도, 증거의 사역은 요즘과 같은 빠른 시대에 어떻게 이해되어질 수 있습니까?”
참으로 명쾌한 질문이었다. 그랬다. 사실 나의 경우도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보다는, 그러한 Mission 을 위해 나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우선” 이었음을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사역은 사실 세상의 성공이 아님에도, 나는 많은 기독인들 사이에서 영향력있고 존경받는 사람들을 같이 바라보며, 그들이 누리고 있는 하나님과의 신령한 관계보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우선시했다.
내 안에 싹튼 생각도 이와 같았다.
‘나도 반드시 저처럼 “영향력 있는 크리스찬” 이 되리라.’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그 반대의 어구. “크리스챤의 영향력” 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찬주의 질문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었음을 며칠이 지나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전제들 위에 자신의 비전을 쌓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덧입혀 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과, 성경 속 인물들은 그들이 그토록 전제했던 과거의 신념과 생각이 철저히 무너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의 큰 축복과 은혜를 누릴 수 있었음을 기억한다.
내 안에 참된 비전을 향한 소망이 하나 둘 씩 더해가며, 끊임없이 자라나는 질문은 “내 것을 버린다(?)” 는 고백이었다. 교만의 황제임을 자처하는 나의 오랜 모습과 관행이 성령님의 거룩한 불길로 태워지길 원한다.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 앞에서, 우선 내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포장한 얄팍함을 과감히 버리고, 비어진 심령으로 온전히 그 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길 소망한다.
그리고…
이런 내 결심과 고백이 사는 날 동안 변함없길 기도한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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