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 복무 시절, 내 룸메이트는 이태원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 이야기를 들었다며 의미있는 自評을 내놓았다. “There is no people who despise Japan and Japanese”. 미국 거래선 담당자 역시 오래 전 진주만의 충격을 이야기 하며 “일본을 깔보는 나라는 세상에 한국밖에 없을 것” 이라고 한다.

오늘, 잘난 일본을 전하고자 한다. 돌 맞을 일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1억이 넘는 인구

1억이라는 국내 인구는 국제 경제 지표의 변화에도 내수 시장이 지켜질 수 있는 버팀목을 의미한다. 세계 경제가 불경기로 치닫더라도 1 억이라는 내부 수요가 있기에 해당 국가의 산업은 면모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1 경조원(1조원이 10,000 번 더해지는 돈)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 보이는 우리나라의 통일 비용. 그 댓가 후에도 우리가 얻는 인구수는 통합 8천만 정도로 추정된다. 여전히 세계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내수 시장의 기본체력” 인구 수에는 20% 부족하다.

그런데 일본의 1억 인구는 거기에 또 다른 비밀을 갖고 있다. 바로 60대 이상의 고령자가 국민의 30% 에 육박하는 전형적인 고령화 사회라는 점. 현실적인 노동 인구로 볼 수 없는 3천만의 복지 혜택은 세계 최고 수준. 이러한 사회 시스템을 짊어진 젊은 청년들과 중장년층이 이끌어 가는 경제 기술력의 기초 체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가 맞은 IMF 가 한 발의 총알 이었다면, 일본은 지난 15년간 자기 방식의 많은 부분을 칼로 도려내고 있었다. 부동산의 폭락, 금융권의 몰락, 기업들의 붕괴.. 그럼에도 최근 이러한 긴 불황을 마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일본식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세계는 인정하고 있다.

기회를 잡을 수 있던 기술력

흔히 한국전쟁을 통해 일본이 전쟁 후 폐허가 된 자기 경제를 일으켰다는 주장이 있고,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 전쟁을 통해 미국이 만들어 준 군사/산업 시설의 중흥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미군이 구매해 준 철강 제품과 군수 물자는 섬유, 철강, 화학 등 우리나라의 각종 산업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

차이가 있었다면 일본은 원래 비행기와 자동차를 만들 줄 아는 나라였다. 비록 전쟁을 통해 습득한 나쁜 방법의 산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강한 기술이 있었다. 미국이 한국전쟁의 병참기지로 대만이 아닌 일본을 택한 것도 이러한 연유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대포와 총이 보이지 않을 뿐, 세계 경제는 전쟁 중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잔인한 세상에서 내일의 기회를 향한 지금의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적어도 일본은 그들의 역사에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보다는 이러한 치열한 싸움에 익숙해 보이는 듯 하다.

일본은 학자/문인/정치인 등 10 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국력과 로비가 필요하다는 평화상 한 명(그건 우리도 있다). 하지만 화학, 물리, 생리학에 이르기까지 기술 분야에 집중된 수상 경력과 문학상도 두 명이나 배출한 그들의 실력은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일본인의 일상 속으로

적어도 내가 가 본 도시 중에는 동경이 제일 인구도 많고, 놀랍도록 거리가 깨끗했다. 함께 HATO Bus 에 오른 외국인들이 창 밖을 보며 내뱉은 말은 “Everything is CLEAN” 이었다. 깔끔함 그 자체.

어린 시절 들은 얘기. “일본 사람들은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 전부 책을 본다”.
일본에 가 본 결과. ‘웃기네.. 잠 자는 건 우리나라하고 똑같다. 책? 만화책 보는 사람은 많더군’.
그렇다면 다른 점은?

  1. 신문, 쓰레기, 오물같은 지저분한 것이 객실 내 있지 않다. (남기는 사람이 없다)
  2. 열차 안에서 휴대 전화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가끔 이멜 보내는 학생들 뿐)
  3. 잡상인, 구걸.. 이런 거 취급 안한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도 없다)
  4. 어른들께 자리 양보는 기본, 혼잡한 출퇴근길 객실도 정말 조용하다. (잠이 온다..)
  5. 객실이 좁고, 의자가 적고, 대신 승하차 문은 여러 개 달린 열차도 있다. (승하차를 편리하게 해서 역간 정차시간을 줄이는  합리주의)

※ 택시 타면 다른 점 -> 비싼 거 빼고.

  1. 차가 왼쪽으로 달린다. (모두 아는 사실, 왜 그런진 아무도 모름)
  2. 승객 앞에 서면 털커덕~ 문이 스스로 열린다. (닫힐 때도 그러니 내버려두길..)
  3. 직진신호 다음에 우회전(우리로 치면 좌회전) 신호가 온다. (우리와 반대인 또 한가지)
  4. 그 직진신호 중간에 우회전 차들이 교차로 중앙까지 나가 기다린다. (동일 시간 내 최대한 많은 차량이 교차로를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얄팍한 차선 변경으로 새치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생각해 본 몇 가지를 적어 봤는데, 우리는 몰라서 이렇게 못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방식이 장점이라 생각하고 고수하는 걸까.. 적어도 나는 저 모습이 우리 것보다는 나아 보이는데.

잘났다고 인정해 주기

우리가, 아니 내가 갖고 있는 아주 나쁜 단점 중에 하나는 바로 “잘난 사람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변에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그저 그 사람의 잘못을 찾기에 급급하다. ‘누군 못해서 이런 줄 알어..’ 라고 스스로에게 항변하며.

물론 이러한 기질이 경쟁심을 자극해 단 시간 내 높은 성취도를 가져오고 있음은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하지만 한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칭찬 릴레이” 를 진행한 적이 있듯, 정말 국민 캠페인이 필요할 정도로 칭찬과 상호 인정에는 인색한 우리 모습이다.

일본의 앞선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들의 잘못된 가치관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며 일본의 “역할론”을 설득시킬 수 있다. 애석하게도, 내가 만난 일본의 모든 사람들은 “독도” 와 “위안부”, “야스쿠니”에 대해 알고 있기는 해도 그것이 우리처럼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는 되지 못했다.

역사 반복의 굴레 속에서

강자의 역사. 강한 나라가 지배하는 세계의 경쟁 구도 속에 우리는 또 다시 중국과 일본의 두 강대국 사이에 경험한 역사의 위기를 답습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필요한 내부의 힘을 길러내야 할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일본=왜놈, 중국=떼놈” 에 기초한 비뚤어진 비판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보는 세계관이 국제 사회에서 힘 있는 목소리가 되도록 실력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니꼬와도”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술로 몸을 채우고, 신바람으로 일상을 독려해도 현실을 잊을 수는 있을지언정 바꿀 수는 없다. 잘난 일본, 그러나 그보다 잘난 우리가 되기 위해 달려가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