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하지만 어느 정도 사춘기가 됐을 때 사촌동생이 불렀던 ‘송아지송아지얼룩 송아지~’ 노래에 숙모께서 “요즘 애들은 마지막 구절을 ‘엄마가 닮았네’라고 부른단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함께 웃고 말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도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가’ 닮았네~‘라고 불렀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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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의 공전

하루 종일, 아니 거의 이틀 내내 회의를 했는데 솔직히 제자리를 돌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순히 문화적 차이나 개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서로의 설명 속에 나도 모르게 배어 있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들이 귀보다 입을 열고 생각보다 말을 앞서게 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 봐도 벌써 오래 반복된 문제들인 것 같은데, 부끄럽게도 아직 결론은 없다. 아니 그 보다 결론은 있지만 실제로 드러나는 변화가 없으니 서로가 지쳐간다고 보는 것이 맞을터. 왜 이렇게 남이 나를 닮아야 한다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들로 빠져드는 것일까.

두 개의 귀

그러고 보면 또 하나의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사람 얼굴을 그리고 난 뒤 꼭 귀를 그리는 것을 깜박했더랬다. 그래서 미술 선생님이 ‘용진이가 그린 얼굴에는 귀가 없네~?’라고 얘기해 주시고는 했다. 옆에 달려서인지(?) 항상 함께 다니고 중요한 감각 중 하나임에도 느낌만 있을 뿐 존재감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들리는 소리가 많아서일까. 정작 들으려는 것은 쉽지 않다. 가령 내 핸드폰을 가득 채우고 있는 뉴스들, 그리고 또 그저그런 얘기들로 가득한 회식 자리, 여기저기 나도 모르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계속 들리지만 솔직히 제대로 기억나는 것은 없다.

미디어의 홍수

이제 우리 모두 각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기 미디어를 가질 수 있는 세상. 정보에 대한 접근 방법도 손 안에서 가능해져 하나의 FACT에 대해서도 짧은 시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더해진다. 그 가운데서 한 번이라도 집게손가락(클릭)이나 엄지손가락(좋아요~ㅋ)를 더하기 위해 때로는 자극적이고 필요하지 않은 흥미도 더해진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서인지 수 많은 미디어 속에서 되려 촛점이 흐려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러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보다 다들 던지는데 너는 한 번 안던져 볼래? 라는 야릇한 제안이 더해지는 것 같은 마음이다. 더 나은 정보기기의 성능은 분명히 여러 창을 만들어 주었지만 관점은 되려 흐릿해졌다.

어떻게 해야할까

오랜만에 글을 적으려니 두서도 없고 이 글 또한 결국 하나의 돌이 될 것 같아 아이러니 한 기분. 하지만 한 가지,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시 어제 오늘 회의로 돌아가 보면 분명 서로가 모르고 있던 그리고 아직 모르고 있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솔직히 다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서로가 필요하고, 이런 미팅을 통해서는 그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며 서로의 신뢰를 더해가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참된 믿음.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그리고 결과에 함께 책임지기. 3년이 지난 독일 생활에서 짧게 나마 부러움을 느껴 본 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의 소망을 회복시켜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언제나~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