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5 월 13 일 (월) 밤 11 시 - 먼지 자욱한 서울 하늘.. 답답해.. 싫어..
지난 1999 년부터 2001 년까지. 나는 용산구 후암동에서 “꿈만 같은” 생활을 했다. 1+1 Type 의 미 8 군 최고 시설의 독방. 카펫과 가구는 물론, 화장실과 욕실, 주방,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까지 딸린 왠만한 호텔 수준의 시설이었다. 이 곳에서 난 미군들과 함께 2 년간 생활했다.
반미 감정이 팽배한 요즘, 부득불 이런 시절을 회상하게 된 건.. 문득 오늘 밤 늦게 집에 돌아오는 내 모습이 너무 처량맞게 느껴져서이다. 쩝..
사실 미군 부대 방의 시설이야,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연고없이 군 생활하는 미군들에게 주어진 편의가 내게도 확대된 것이라 하자. 하지만 지금 내가 그리워 하는 것은 “용산구 후암동” 이라는, 시내 한 복판의 유리한 입지 조건 때문이다.
집 가까운 것이 최고의 경쟁력이다. 정말이다. 사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나의 지론은 “자동차 보다 집이 먼저” 다.
학교 앞 도보로 5 분 거리에 집이 있는 학생과, 나처럼 학교에서 지하철 한 번 갈아타고 지하철 역하고 집도 도보로 15 분 거리에 있는 학생의 경쟁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초월할 수 없는 기본 여건의 차이랄까.
어디 이 뿐이랴.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 우리 형은 매일 부평까지 2 시간 넘는 출퇴근 길에 파김치가 되기 일쑤지만, 아직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선한 마음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그렇게 넓은 마음이 없을 것 같다..
아직도 실감이 안되시는 분은.. 다시 한 번 상상해보라. 난 간혹 근무로 인해 주말을 용산 부대에서 보낸 후에, 주일 교회 예배를 위해 8 시에 일어나 8 시 30 분에 교회로 향했다. 그래도.. 내가 제일 먼저 도착.
지금 집에서 생활하며 난 같은 시간의 예배를 위해 1 시간 일찍 일어나 1 시간 전에 출발해야한다. 그 소모된 1 시간은, 집으로 돌아올 때도 고스란히 매겨진다.
요즘들어 참 힘든 하루다. 수요일과 목요일 연이은 중간 시험에, 내일 아침까지 내야 하는 레포트. 이 와중에 분당에 살던 친구는 집이 “공덕동” 으로 이사했다고 자랑이다. 새로 생긴 지하철 6호선을 타면 3 정거장이라나. 늦은 밤에도 사람 가득한 지하철에 내내 서서 돌아오며, 세보지 않았던 우리집까지의 지하철 정류장 수를 헤아려 보니, 난 30 정거장이다. ㅡ.ㅡ
아직 압구정동이 좋다는 말에 우르르 몰리고, 대치동이 학원교육에 좋다는 말에 ㅡ 사실 유/초/중/고/대학 을 모두 대치동 본고장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말은 말짱 “허구(!)” 에 불과하다 ㅡ 또 왁자지껄 달려가고.. 이래저래 서울과 강남의 집 값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려놓은 우리 어른 세대가 원망스럽기만 할 뿐이다.
어디 그뿐이랴.. 좋은 집이 아닌 “비싼 집” 에서 사느라고, 좋은 차가 아닌 “비싼 차” 를 굴리는 것은 필수 제반 사항이 되어버리고.. 서울 하늘은 하루가 멀다하고 매연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세계화’를 외치는 이들.. 언제 쯤 그렇게 “합리적” 인 사람들이 될까?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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