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 10 월 15 일 (수) 퇴근하자마자 바로, 밤 11시 30분 - 맑고 쌀쌀한 날씨.

대기업에 들어온 나는 요즘 “삼성”이라는 Brand 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척 많이 있지만,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이 그 보다 많음을 실감하고 있다. (‘이름’에 관한 내 소견이 ‘특정 집단’으로 한정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는 곧 ‘삼성’ 이란 브랜드 가치가 지닌 파워보다, 그러한 파워를 있게 끔 만드는 밑바탕에는 더욱 큰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특별히 치열한 전투 현장의 선봉에 서 있는 소위 “영업사원”인 내게는 더욱 그렇다.

“이거.. 삼성이 만든 거 아니에요?”
“삼성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아니, 그래도 삼성이 한 건데..”

현장에서 들리는 소비자의 목소리는 매섭도록 따갑고, 그들의 요구 사항은 우리가 제시한 어떤 제품과 방안보다도 즉각적이며 세분화 되어 있다. 경쟁 업체들은 “삼성이 나서면 시장은 끝이다” 며 지배력을 논하지만, 삼성맨이 느끼는 실상은 “나서는 것이 두려운 시장” 인 셈이다.

오늘도 저 멀리 구미에서 들어온 작은 일 하나로 인해, 부서 내 모든 인력들이 총동원 되어 매달렸다. 협력 업체와 소비자 간에 쌓인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나선 것이다. 대구에 출장 중인 과장님을 급히 구미로 이동하도록 부탁하고, 부산에 있는 필증을 구미로 특송시키느라 수 십 만원의 비용을 투자하고, 협회 검사관의 마음을 유도하기 위해 전화로 연신 죄송하다며 부탁하기를 수 십차례..

결과는 이러한 노력에도 결국 협력 업체의 작은 부주의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데 실패했고, 이 일을 주도한 내게 떨어진 소비자의 불평은 역시 “삼성이 뭐 이래요” 였다.

책임. 근래 들어 “자유와 권리”를 외치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 현실이기에, 자꾸 잊혀지는 단어이다. 책임..

일에 대한 책임, 자기 자리에 대한 책임, 공부하는 것에 대한 책임, 말한 것에 대한 책임, 우정에 대한 책임, 세상에 대한 책임, 사랑에 대한 책임, ..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소홀할 수 없는 내 자신의 책임 의식이 너무 잊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고, 빨리 좋아하고 빨리 싫어하고, 급하게 생각하고 급하게 달려가는 일들이 어느 덧 우리에게 “경쟁력” 이 되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경쟁력이 아닌, 자기 주머니와 이익을 다른 사람들의 것을 취해 채우려는 이기심이 그토록 세상의 속도를 더하게 한다.

회사의 이름 앞에 한 동안 느낀 책임 의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일생을 바쳐야 할 소명으로 더해짐은 물론이다.

주님, 사랑합니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