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출장의 여정 중 마지막 주. 드디어 파리로 향했다. 샤를 드골 공항에는 벌써 너 다섯 차례 내렸던 것 같은데, 공항 밖으로 빠져나가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지막 주를 맞이한 탓에 집에 대한 그리움도 극에 달했던 시간. 파리의 여유로운 낭만이 나를 찾아왔다.

Tower Effel

구스타프 에펠. 훌륭한 팀웍을 자랑한 그의 건축 사무소는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파리에서 가장 높은 탑을 설계하고 건축해 낸다. ‘그것 참 훌륭한 직원들을 두었군..’ 타워 밑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 일행 옆에서 가이드의 안내를 훔쳐 듣노라니 어디선가 공감할 만한 Feed Back이 들려왔다.

타워 옆, 도보로 10분이 채 되지 않는 거리에 호텔을 잡아주신 배려에 무한히 감사했다. 객실의 크기와 화려함을 떠나 아침 조깅으로 “다같이 돌자 에펠탑 한 바퀴~♬“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크나 큰 기쁨이었다. 최근 잘 알려진 파리 시내의 자전거 대중교통, Velib도 한 번 시도하고픈 욕심이 들게 했지만.. 아직 이 곳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만큼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미술 아닌 마술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 주말 이동일을 파리로 택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르누아르 전시회에서 승혜가 알려준 커다란 그림도 드디어 봤고, 바로 그 주에 밀라노에서 만난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코드”를 떠나 그가 왜 천재인지를 확인하게 해줬다. 많은 사람들 뒤에서 점차 앞으로.. 비로소 모나리자와 정면으로 마주했던 순간, 10여분이나 지났을까. 이 아주머니의 얼굴과 눈빛, 그리고 미소가 그림 위로 떠오른 것은 나만 느낀 감동이 아닐게다.

언젠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서점에서 둘러본 적이 있었는데, 오르셰 미술관 안 30평 남짓한 그의 작품 전시실에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드디어 그가 보고 손으로 그린 장면들을 함께 마주했다는 기쁨이 나를 찾아왔다. 서울시립 미술관에서 만난 한 명 한 명의 작가들이 이 곳에 다 모여 있다니.

근대 문화

역사적으로 풍부한 기록이 존재하고, 또 그만큼 거대한 격변기였던 19세기와 20세기. 세계의 패권이 미국에 넘어가기까지 유럽인들이 간직한 문화적 가치는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었다. 왕정 시대의 치열한 정쟁과 시민 정신이 태동한 파리 대법원과 노틀담 성당은 물론, 여러 사람의 숭고한 뜻이 외쳐졌을 파리 시청 앞에도 “자유, 평등, 박애”의 문구는 늘 새겨져 있었다.

거기에 노틀담 교회를 비롯한 역사적 건물들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한 닭의 조형물은, 단지 수탉이 프랑스의 상징 ㅡ 1998 월드컵 마스코트를 찾아 보세요. ^-^ ㅡ 임을 떠나서 주님의 제자 베드로에게 그 분을 향한 사랑을 일깨워 준 동물로서 지금도 내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외침’을 들려주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짧은 추억

짧은 시간이었지만 파리에서 만난 천재 예술가들의 흔적과 그들이 찾아낸 시간과 공간의 여유로움은 내게 많은 생각들을 전해주었다. 무엇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에릭 사티의 한가로운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가 파리 몽마르뜨르 언덕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Overlap 시킬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던 길, 선배 주재원 분께서 본인도 퇴근 길이라며 선뜻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무덤이 있는 마을을 잠깐 지나쳐 주셨다. 그의 마지막 그림이 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 옆으로 그와 그가 그토록 아낀 동생의 무덤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내게도 익숙한 오베르의 교회 건물은 비록 보수중이었지만 그대로 서 있었다.

‘언제나 행복 속에서…’ 용진